본문 바로가기
파피툰

뜻밖에 결혼.

by 파피켄 2023. 1. 25.
반응형


0. 

34살. 두 살 아래의 아내를 소개로 9월에 만났다. 대구 사는 남자와 서울 사는 여자. 둘 다 일은 바쁘고 둘 다 결혼은 큰 뜻에 없던 와중에 추석 연휴에 끼워 넣어서 성사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경복궁에서 이루어진 첫 만남.

 

 

-비혼 결심
 

평소에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그래도 고민과 희망은 놓지 않았었던 차였으나, 34살에 이르면서 마음에서 완전히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정리했었다.

그 당시 나는 사업이란 것을 하고 있었으나 희망적이지는 않고 빚은 많았으며, 공동사업이면서도 나의 결정권은 약했었다.

애증의 플라스틱 재생 사업. 한마디로 공장을 돌렸다. 같이 한 사업이어서 많은 도움을 얻었었으며, 관계도 좋았으나 나에게 인사권이나 큰 경영 결정권 없었다. 나보다 나이가 15살은 많은 ‘삼촌’이라 부르는 분과의 동업이었으니,

 

수입은 적었고, 빚은 많았으며, 집안도 별 볼 일 없었다.

34살이 되던 해. 어머니에게 평소에도 해온 말이지만 더욱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인류 역사에 결혼 안 하고 살다가 죽은 사람은 항상 있었고, 나도 그런 사람으로 죽으려나 봅니다. 애먼 젊은 여자 나랑 누가 결혼한다고 해도 고생만 시키니까 혼자 조용히 살다가 갈게요.”

 

어머니는 차분하게 동의 하셨고, 간혹 결혼에 그나마 입을 여시던 것도 더는 없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34살을 보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늦여름에는 시간을 내어 혼자 제주도도 다녀왔다. 너무 재밌었다.

‘앞으로는 혼자 여행 종종 다녀야지’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좀 더 일찍 여행해 볼걸. 여행 좋아하는데...

 

-막 나간 소개팅
 

9월에 어머네가 입을 열었다.

“니가 혼자 살겠다고 마음먹은 거 알고 내가 가만히 있었는데, 여자가 남자는 돈 못 벌어도 상관없다고 했다더라, 그러면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내가 이후로는 정말로 만나보라는 이야기 안 하마,”

내가 완벽히 세워놓은 명분을 정면으로 대립하는 만남 건이 생겼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에 한번은 받아 주는 게 자식 된 도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식들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어머니들의 거짓말에 항상 속는다..결국 마지막이긴 했지만)

 

첫 만남은 그랬다. 경복궁역 앞 파리바게뜨 앞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세련되게 옷 입은 도시 여자였다. 갈색 부츠 짧은 청치마에 알록달록한 스카프에 밝게 염색한 긴 머리에 웃는 눈이 매력적인 여자였다.

나는 검색해둔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아이스크림 와플을 시켰다.

훗날 아내가 나에게 말해줬지만, 정말 여자 안 만나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한번 먹어보라는 권유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가? 그랬나??) 같이 와플을 먹으면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자세한 긴 이야기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나의 첫마디는 그랬다.

 

“저 달에 이백 벌어요.”

 

갈 테면 가라. 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지 않았다. 훗날 그녀가 말하기를 여러 번 만나지 말까 고민했단다. 그런데 그렇게 되진 않았다. 아니 그럴 틈도 없었다 우리에겐.

 

애프터의 성공 비결은 설빙 멜론 빙수였다.

 

아내는 설빙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고 나는 설빙 마니아였다. 나는 능숙한 테크닉으로 멜론을 단 하나도 흘리지 않고 썰어서 담아주었으며 아내는 흠뻑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만남이 끝나갈 때도 나는 애프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 나는 곧잘 질문을 잘 뒤집어 본다.

‘ 애프터를 안 할 이유는 있는가? ’

 

이내 든 ‘이유가 없다.’라는 생각에 아내에게 애프터를 신청했고, 그녀는 뭐가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며 수락했다.

 

첫 만남은 9월 26일이었다.

애프터 때에서 사귀기로 했었으나, 우리는 각자의 일이 너무나 바쁜 사람들이었고, 곧바로 이어진 추석 연휴 때 몇 번을 더 보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바빠서 만나지 못하다가 헤어질 것을 예감했고 서로 동의 했으며, 나이도 둘 다 어느 정도 있겠다.

헤어질 거 아니면 결혼부터 하자.

라는 이상한 논리가 나타났으며, 집안 어른께 인사나 미리 드리자고 나온 말은 상견례로 급진했고, 날짜가 잡혔으며,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식 날은 12월 5일이었다. 71일 만의 결혼이다. 80간의 세계 일주도 아니고...

 

-스몰웨딩은 싼 게 아니야 자기야.
 

10월 말에 성사된 상견례에서 결혼은 대구에서 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 말인즉슨 일하는 직장인 멀리 떨어져 사는 연인은 4번의 주말 동안 모든 결혼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는 의미였다.

 

가진 것 없는 예비부부에게 재고 따지고 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저 일이 성사 되면 성공이다.

 

아내는 이효리 님의 결혼식 같은 스몰웨딩이 좋지 않냐고 했다. 하지만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임을 나는 잘 이해하고 있었고,

 

상갓집 손님은 아들 손님이고, 결혼식 손님은 부모 손님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결혼식은 본인들이 주관할 지언정 주도권은 양가 부모님에게 있다는 것은 현실이었다.

 

그리고, 축의금... 축의금 회수는 엄청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한 가정의 사업이며 그동안 뿌린 축의금의 회수이며, 행사를 알림으로써 영업의 역할도 하며 살림의 보탬인 결혼식을 하객도 소수 인원만 부르는 스몰웨딩은 맞지 않았다.

 

게다가 교회 지인 소개로 만났던 우리는 교회 인맥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는 교회에서만큼은 천덕꾸러기일지언정 인기인에 가까웠다. 그 인적 자원의 축의금 모집은 매우 중요했다.

 

“자기야 우리가 해야 할 건 셀프 웨딩이에요. 근데 스몰웨딩은 비싼 거야. 그리고 12월에 야외웨딩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신부의 사는 지역에서 하는 통상적인 관례와는 달리 대구에서 합의가 있었었고, 결혼 준비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었으며... 돈과 시간은 없었다.

아내는 불안해했고, 나는 자신만만히 남을 기일을 맞설 계획을 세웠다.

 

첫 주에 예식장은 교회로 잡았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종종 진행하던 그런 교회는 아니었는데 부탁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뷔페식당도 겸해 있었기에 같이 연계할 수 있었다. 장소와 날짜를 정했으니 바로 청첩장을 끝낼 수 있었다. 제일 싸고 무난한 걸로.

 

“여보. 청첩장은 비싼 건 아까워. 한번 돌리고 나면 바로 이쁜 쓰레기야.”

 

아버지 지인의 작은 인쇄소에서 싸게 만들어서 첫째 주에 대구에 내려온 아내에게 청첩장 반을 건네고는 각자 돌렸다.

 

둘째 주에 바로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을 들어갔다.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은 무엇인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결혼하고자 태어났다면 거쳐 가야 한다는 스. 그.메.

 

기본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300만원이라는 이 험한 결혼 세계에서 나는 검색을 하다가 ‘착한 웨딩’을 알게 되었다.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100만원.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숫자인가. 백만원...

게다가 나는 결혼식장을 잡고 시작했으니 더욱더 저렴하게 깔고 갈 수 있었다.

 

드레스는 세군데를 둘러보고 각각 3벌을 입어보았으며, 적절한 곳을 찾아서 드레스를 픽스했다.

 

주중에는 일하며 틈틈이 어머니가 신혼집을 알아봐 주셨다.

빚을 내기 싫다는 아내의 고집에 미니 투룸이라 부르는 원룸을 알아보아야 했다.

아내는 이 집에서 아이를 가지고 거동을 잘하지 못하는 와중에 얻게 된 폐쇄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이후로 이사 가는 집마다 문이란 문은 다 떼고 살아야 하게 된다.

 

세 번째 주는... 이미 결혼 준비의 마지막 주였으며, 다음 주면 결혼이어야 했다. 우리는 웨딩 촬영을 하러 대구 웨딩 거리로 향했다.

추가로 내가 아내에게 평생 미안해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일을 내가 회사에서 쓰던 트럭으로 아내를 태우고 다니면서 소화해 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폐기물 수거 차량...

 

아내가 차 한번을 렌트를 안 해줬냐며 몇 년 후에 나에게 뭐라 했다. 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다. 난센스. 없다 센스.

 

그래.

 

이런 남자는 결혼해선 안 되는 게 맞았다.

 

웨딩 거리에서 쌀쌀해져 오는 11월 말의 날씨에 우리는 쓰레기 트럭을 옆에 끼고서 웨딩 촬영을 마쳤다.

 

 

-결혼의 시작은 누가 알리나

 

친구에게 사회를 부탁하고, 바이올린 전공하는 동생에게 피아노 반주를 부탁했다. 양장점을 하시는 아버지 지인분께 정장도 싸게 맞췄다. 정장을 처음 사봤다. 현재 시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정장이다.

 

교회에서 대관한 강당에서 신부대기실이 들어서고 아내가 메이크업하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요일의 교회 결혼식이니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도 쉬이 들어왔다. 일평생 앗싸 인생을 살았지만, 나름대로 교회 인맥은 전국구였던 터라 전국에서 400명이 모였다. 축가는 두팀이 15명 40명씩 준비되었었다.

결혼식장이 아니라 시작 시각도 내가 정할 수 있었고 끝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시작 시각에 반주자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서둘러 뛰어다니며 반주자를 찾아 헤맸고, 무아지경으로 반주 연습 중이던 반주 동생의 손을 잡아끌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시작 시각이 오 분쯤 넘기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나를 쳐다봤고, 어떤 위화감을 한 가지 더 깨달았다.

 

‘결혼식 시작은 누가 알리는가?’

 

많은 결혼식을 다녔지만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 그래서 시작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 지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채 신랑 대기성에 나는 서 있었고, 사회를 봐주기로 한 친구가 단상에 서서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아이게 셀프 웨딩이구나.

 

 

- 결혼의 시작
 

결혼식 자체는 순조로웠다. 식사도 훌륭했고 사람들은 만족했으며 축의금도 유의미한 도움이 될 만큼 들어왔다.

 

신혼여행은 포항 1박 강원도 처가댁 1박, 부산 1박이라는 강행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차는 올란도를 대여해 처가댁에서 세탁기를 하나 얻어서 내려온다.

 

2달 정도는 아내가 회사를 정리하여야 해서 주말부부로 지냈다. 그리고는 퇴사하는 날 나는 트럭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서 아내의 짐을 싣고 내려오면서 본격적인 결혼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728x90
반응형
LIST

'파피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7.에어컨 투쟁  (0) 2023.01.25
06.뜻밖의 재능  (0) 2023.01.25
05.괜찮아  (0) 2023.01.25
4화 아내의배신  (0) 2022.04.14
003화 솔로지옥입문  (0) 2022.04.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