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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툰

뜻밖의 득남

by 파피켄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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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탄생. 아빠가 되었다.

-육아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랬다. 아내가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아이가 된다. 아내 육아부터가 시작이었다.

 

생각보다 체력이 약했던 아내는 잠이 많았다. 12시간을 넘게 자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14시간도 거뜬히 자냈다.

나도 잠이 많은 편이라 최소 8시간은 자야하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적게 자도 머리가 쎄한 느낌이 들면서 .. 이러다가 이란게 오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수면시간은 철저히 지켰다.

사실 애니매이션 전공을 하고 만화 쪽에 몸 담을까..라는 생각도 해본 젊은 시절이 있었으나 나의 수면시간은 창작시 단명을 보장한다고 생각했기에 포기한 면도 있었다. (재능이 부족한게 주요 원인이었지만..)

 

태교가 갑이던가

 

임신을 자각하고나서 아내는 예민해졌다. 아마 아이는 2월 즈음에 가진 듯하다.

흔히 많은 글들에서 말하는 점점 배가 불러졌다는 말로 이 한마디를 끝내기에는 시간이 결코 만만하게 흐르지 않았다.

 

열달은 1년이나 다름없다. 우리 일년 인생을 바라봐라. 새해를 맞이하면 들숨에 구정이 오고 날숨에 삼월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1년이라고 부르지만 10개월짜리나 다름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아이는 그냥 일년동안 어미 뱃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 일년의 육아를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2개월은 애 떨어질까 노심초사.

 

아이에게 귀가 생겼을 때부터 아내는 자꾸 아이에게 말을 붙여보라고 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자꾸 태교여행이라는 어줍 잖은 단어를 듣고 와서는 자꾸 어딘가를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다녀온 데를 다 기억하는거야?”

 

그래도 주말이면 산이고 들이고 나가려고 했다.

아내는 평일에 항상 집에만 있었으니까. (결혼 후 그녀는 절대로 나 없이는 혼자서 외출하지 않는다.)

 

아침이면 내가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놓고 회사에 나갔다. 아내는 항상 열두시를 넘어서 일어나서 한 끼를 먹고 저녁을 준비해 줬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외식이었다. 입덧은 없고 먹덧이 일어났다. 평소에 음식을 가급적 깨끗하고 유기농에 가깝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으나, 먹덧 앞에서는 그런 것은 없다.

떡볶이 짬뽕. 과일이란 과일은 다 사줬다.

아내가 두고두고 이것만큼은 인정한다. 먹고 싶었던 것은 다 먹었다고.. 이것은 계절의 축복도 존재했다. 그래도 먹고 싶어 할 때에 제철 과일이 다 맞아 들어가긴 했다.

그래도 새벽 2시에 깨서 먹고 싶은 게 있어서 혼자 울고 있는 아내는 참 어이가 없었고 그것은 선을 넘은 호르몬의 만행이었고 그 와중에 쥐톨 만큼 귀여운 그것이었다.

 

그래도 벌떡 일어나서 다녀왔다.

 

더러 생각한다. 결혼하기 좋은 남자는 호구남인건가. (하지만 나는 가난하지!)

 

 

-소심하고 유약한 흔해 빠진 시시한 남편

 

원룸은 좁았다. 그리고 에어컨이 없었다. 그리고 대구의 여름은 더웠다. 이것만큼은 후회하고 미련했고, 바보스러웠다. 1년이 지난 다음 일년 때에 원룸 주인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니 에어컨이 없는 줄도 몰랐단다. 어찌 작년을 살았냐면서 급히 에어컨을 달아주었다. 이렇게 간단했던 일을..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 힘들게 자라서 생긴 바보 같은 일.

 

나는 당연한 권리도 애매하게 참으며 넘어가는 편이었다. 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유약함을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포장하며 나를 위안했다.

 

그러한 유약함에 지긋지긋했고 일부러 험한 직장을 골라서 했다. 쓰레기 처리업.

이런 업종은 사실 일부러 찾아서 선택하지는 않는다. 가령 하던 사람이 벌이가 괜찮으면 자식이나 친인척이 소개 받아서 배우게 된다.

 

나도 비슷했다. 친척이라기엔 멀고 먼 사돈의 삼촌뻘인 사람과 시작했으니. 하지만 결심은 내 것이었고, 나는 사람이 두려웠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흔한 이야기이다. 순진하고 가진 것 없는 어린 시절에 괴롭힘 당하며 만들어진 폐쇄적인 성격.

한 예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철물점을 가볼 일이 없다. 간단한 공구가 필요하면 그냥 마트를 간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공장을 차리면서 철물점을 가보는 게 불가피해졌고 나는 철물점을 들러야 했지만 대인기피가 심했던 나는 트럭을 몰고 가면서 철물점에 들어가 차를 세우지 못해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차를 돌려 블록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다시 차를 세우지 못했다.

그렇게 세 바퀴를 돈 후에 네 번째 만에 철물점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낯선 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많은 마음의 준비와 심호흡과 자책과 격려와 몰아세우기를 해야만 했었다.

 

물론 거기는 그냥 가게이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지만 그것은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은 거길 다니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워낙 많은 물건을 취급하기에 직원들이 항상 찾아주는 곳이었다. 직원은 항상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봤고 그 낯선 남자와의 접촉은 부담스러웠지만 적응은 할 수 있었고, 단골이 되면서 나름의 친숙함도 생기게 되었다.

낯선 사람은 여전히 무섭고 어렵지만 조금씩 영역을 넓히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었다.

 

하지만 원룸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한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다. 35살의 나는 그랬다.

 

아내에게 잘하지 못한 것은 평생 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잘못이란게 사라지겠냐마는 부부관계에서 잊혀질 권리 같은 것은 없는 것만 같다.

 

아내는 임신 이후부터 술을 먹지 못했고, 모유 수유까지 하면서 2년 반 동안 맥주 한 모금 하나 마시지 못했다. 참고로 나는 주에 두 세번 간간히 맥주 한캔 정도가 낙이었다. 술은 결혼 전부터 점점 재미를 잃던 차였다.

그리고 아내는 오만가지를 먹덧을 부리며 다 먹어대었지만 정말 술만큼은 입도 대지 않았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는 부분.

 

6개월이 넘어가면서 아내는 엎드리지도 똑바로 눕지도 못했다. 원래도 운동은 잘 못하던 아내는 더더욱 꿈도 꾸지 못했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 하고 집은 더웠고, 대구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었다.

 

정말 호기롭게 나랑 결혼 했지.. 그리고 나는 그녀의 우울감 대부분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나는 정말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참았달까. 화 한번 내지 않을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녀는 지금 힘든 것이다.. 아이 태교도 신경 써야지..

하지만 정말 하루하루 부딪히고 싸우기 일쑤 였다. 그래도 정말로 많이 참고 물러섰다. 애 낳으면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속을 태우며 참았다.

 

어느날 아침이었다. 참새가 바로 옆에서 지저기는 듯한 상쾌한 새소리와 함께 산뜻하게 눈을 떴다.

톡톡.

누군가가 두꺼운 종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자세히 주변을 살피고 나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침대를 놔둔 벽에 에어컨 설치를 위해 과거에 뚫어놓았던 구멍이 있었던 것 아닌가?? 데잉?

 

내 팔이 다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을 단지 벽지 한 장으로 막아 놓은 구멍에 참새가 들어와서 짹짹 울고 있었다. 참새가 벽지를 쪼는 소리가 톡톡하고 들려왔던 것이다.

서둘러 벽을 두드려 참새를 쫓아내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조치를 할 수 있겠는가. 살지 반년 만에 깨달았다는게 웃기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만큼 집이 춥다거나 비가 새지도 젖지도 않았기에 그냥 저냥 살만은 했지만 이제는 알고 나서 보니 아침마다 아침 해와 함께 벽지에 밝은 빛이 둥글게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허허 하고 넘어 갈만 했지만 아내에게는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이제 만삭에 이르렀다.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한쪽으로만 들어가 누워 있어서 아내는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아이가 기지개를 켤 때면 어느덧 자란 아기가 왼쪽 폐를 밀면서 오른쪽 골반까지 누르는 것을 느끼면서 훌쩍 커져버린 뱃속 작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기도 했다.

 

내 안에 사람이 있기는 있는 건가봐.”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머리가 커서 예정일 보다 3주 정도 일찍 분만을 해야 한단다. 머리 크기 9.4cm가 분수령이라고.. 우리 아들은 머리가 크구나. 그래 머리 큰 사람이 리더쉽이 좋다더라. 서양에서는 머리 큰 사람이 호감이라지?

우리는 뱃속에서 날 수를 다 채우고 제왕절개를 할까, 3주 일찍 유도분만을 시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하고 날을 잡았다.

 

-지옥의 유도분만과 무통천국.

 

출산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무엇이 무섭겠는가. 언제 끝날지 어떻게 진행될지 말이다. 진통은 어떠한지 글로는 많이 봤지만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냥 무지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진통은 무엇이며 진진통이란 말은 처음 들었고, 진통주기도 무지했다.

아니 심지어 지금도 긴가민가하다.

그저 그때 우리는 호기롭게 힘내자면서 예약시간 전에 마지막 식사로 소불고기 집에서 배를 잔뜩 채우고 병원으로 입성했다.

유도분만 수액을 맞으면서 간호사분이 운동하고 있으라며 짐볼을 주시고 가셨는데 우리는 하하호호 하면서 짐볼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놀면서 노가리를 까댔다..

 

그걸 보시고 간호사님이 답답해서 핀잔을 주시고 가셨다. 그렇게 하시면 안된다며.. 내진은 간간히 하면서 자궁문이 안 열린다면서 운동 좀 해라고 해라고 했는데, 우리는 어느 정도로 해야하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안았다.

 

그러다가 행복한(?) 시간은 점차 끝이 났다. 만 하루가 지나가도록 출산의 진전이 없었다. 아내는 간간히 오는 진통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옆에서 코를 골고 잤다고 훗날 두고두고 혼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내는 밥도 못먹고 잠도 못 자는데 옆에서 무얼 먹고 마시며 자는게 여간 간단한건 아니다.

그냥.. 내가 나가서 밥먹고 오는거 자체가 밉고 싫은거야.. 이건 뭐 내가 눈치껏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 왔지만 나는 그냥 굶는 자신을 버려두고 배채우고 온 먹귀신 씌인 돼지새끼로 밖에 안보이는 거다.

잠은 자면 또 그게 그렇게 밉단다. 그리고 나는 코를 상당히.. 심하게 고는 사람이며 길바닥에서도 머리만 대면 원하는 곳 어디에서도 잠이 바로 들어버리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 옆에서 태평스레 코골며 자고 있으면... 그래 밉겠지 알겠지. 이해하는데... 사람이 잠은 자야지...

그렇게 끙끙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무통주사를 요청했고

무통주사는 두고두고 아내가 선택한 것 중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두고두고 회자하게 된다.

와 사람들이 무통천국 무통천국이라더니 정말 살거 같아!”

비록 무통주사는 출산 자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것임이 아님에 불구하고 당사자에게 질질 끌어주는 고통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기억되었다.

 

후에 알았지만 출산은 아이와 엄마의 협동 작전으로 아이가 힘을 쓰고 뺄 때에 엄마가 같이 협응해서 단계적으로 맞춰 움직이며 점점 통증 단계가 심해지는 원리라

무통을 하면 엄마가 아이의 활동에 협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무통 마취가 풀릴 때에는 통증 단계를 확 건너 뛰어 갑자기 큰 고통이 휩싸이게 되면서 고통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제왕절개로 넘어가는 고정된 레파토리로 이어진다고..

여하튼 시간이 지체 되자 상태를 봐주시던 선생님은 자궁내막을 강제로 터트리셨고 그 때부터 지옥문이 열렸다. 이제는 잘 낳든 못 낳든 낳을 수밖에 없다 하시면서 마치 화이팅! 이제 알아서 하시오.’ 라고 하시듯이 병실 문을 나가셨고 간호사분들이 들어와서 아내를 보조해주기 시작했다.

 

아내는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아 체력과 근력이 매우 저조했다. 그것은 고통에 저항하며 해야할 일을 해내어야 할 때 큰 장애 요소였다.

아내는 간호사가 가이드해주는 대로의 호흡법과 힘주기를 전혀 이행하지 못했다. 내막이 터진 후부터는 나는 분만실에서 내보내져서 기대려야했다. 어차피 이제는 한시간 내로 결판이 안나면 제왕절개라는 설명을 들었다.

 

-탄생과 질투

 

아내는 숨도 제대로 못쉬고 힘도 전혀 못주어 전혀 아이가 나오지 못했다.. 그랬던 것 같다.

45분이 경과 되었을 때에 ?

약 새벽 2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엘리베이터가 띵- 하며 울리며 문이 열리면서-

 

살짝 벗겨진 머리가 부스스하게 해서 잠이 덜 깨어 눈꺼풀이 꺼끌꺼끌한 채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걸어오시는 키 큰 의사선생님이 보였다.

, 이분이 바로 병원 벽 여기저기에서 깔끔한 병원 복에 인상 좋게 웃으며 포즈를 잡고 사진이 찍혀 있던 원장선생님임을 한 템포 늦게 알아차리고는 나는 벌떡 일어나서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인사를 받는 듯 마는 듯 내게 반응하시고는(흔한 남자들의 수줍은 리액션) 휘적휘적 분만실로 평온하게 들어가셨다. 일말의 긴장감도 없이, 마치 아침에 출근해서 회사 컴퓨터에 앉아서 습관적으로 이메일 체크부터 하듯이

 

그리고는 십분 만에 아이를 받아내셨다.

 

, 이게 명의로구나. 나는 제왕절개를 하게 될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저 손을 집어넣고 (회음부 절개는 시행했지만) 그것도 아이가 뒤로 돌아 있는 상태에서 머리를 잡고 테크닉으로 빙빙 돌려 빼내셨다고 했다.(아내피셜)

 

여담이지만 나는 쓰레기처리업을 하며 더러 유해조수 구축도 직접 해보았으며 젊은 시절 닭 도축알바 경험도 있던 터라 사실 피 난장판의 분만실이 나에게 그렇게 큰 긴장감은 주지 않았다.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받아 들었다.

붉은 고구마.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엄마의 좁은 산도를 통과해야 해서 머리가 길게 눌린다는 사실은 조카가 갓 태어났을 때의 사진은 받아보고서 알고 있었다.

보통 부모들은 그 처음의 교통사고 난 듯한 찌그러진 붉은 고구마를 보고 적잖은 충격과 걱정을 한다지만 다행히 나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게다가 붉은 고구마 치고 잘생긴 아들이지 않은가!

 

젠틀버스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고는 아이를 아내에게 안겨주었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도 아내는 바쁘고 고통스러웠다. 사실 아이를 안아볼 여유나 겨를은 찾아보기 어려움에도 정신없음 와중에 절차에 따라 한번 안아보는 느낌이 강했다. 아내는 어떤 감정도 내보일 여력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태반이 통째로 나와야 했고 그에 따른 고통은 아이가 나올 때 못지않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은 얼떨떨함 속에서 이어졌다.

나는 사실 흔히 말하는 MBTI에서 인팁 인간으로 그다지 감정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사실 내 아이였고 경이로운 존재였으나 내 손에 받아들 때 그렇게 성스럽다거나 감동스럽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했고.. (아내는 무엇보다 이 부분 때문에 나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뭐 정말 갓 아기를 안아본 것은 처음이지만, 생각보다는 아이와 어떤 교감도 없었고..

아 눈은 마주쳤지만 그 때 든 생각은

 

아 태어나면 시력 형성이 안되어서 앞이 잘 안보일 텐데 시야도 흑백이랬고, 눈이 맞았는데 날 제대로 본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이었다.

 

다만 정말 작았다.

 

내 팔뚝 길이.. 40센티미터 3.4kg.

 

내가 이제 아빠구나.. 라는 생각이나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생각을 뒤집었다.

 

이 아이가 앞으로 나를 아빠라고 부르겠구나..’

 

얼떨떨

 

그리고 첫 만남의 어색함. I 라서 낯가린다고..

 

그리고 질투

 

나는 아이와 사이좋게 살아가고 싶었지만, 이 아이는 이미 엄마가 된 아내와 10달의 유대관계가 형성이 된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고, 나와는 첫 만남이었다.

 

와 시작부터 불공평해.

그리곤 다짐 했다.

 

그럼 앞으로의 10개월 동안 잘해주자. 그 때에는 엄마보다 아빠를 좋아하게 만들어주마!”

 

내가 이런 건 잘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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