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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툰

출산은 프롤로그일 뿐

by 파피켄 202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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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병원밥이 맛이 없다는데 아내는 왕왕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은 밥이 꼬박 이틀을 굶으며 애를 낳고 나서 먹은 병원 미역국이라 했다.

 

산모 미역 가득 담고서 참기름과 들기름 적절히 섞어서 한 대접 나온 그 미역국.

어떻게 그걸 아냐면 워낙 양이 많아서 아내가 다 먹고 남긴 미역국으로 나도 먹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배마저도 채워주었다.

아니 굶지도 않은 나도 맛있었던 그 미역국이면 아내에게는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앞으로 조리원에서의 2주간의 식사 생활을 예고해주는 듯한 긍정적인 신호탄이기도 했다.

 

-조리원 천국

 

조리원은 비쌌다. 심지어 이 병원은 가격이 싼 편이었는데도 200만원 후반 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 임신 기간 중에 이 조리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엄청난 논쟁과 자료검색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아내의 의견에 손을 들어 조리원 입소를 결심 했었다.

 

흔히 전 세계에서 한국 밖에 없다는 말이 있지만 또 다른 말로는 한국 여성의 골반이 출산에 가장 불리하다는 의견 또한 대립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느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히 열린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어디선가는 꼰대겠지만.. 하지만 그것은 어쩔수 없다. 모든 영역에 열린 인간이란 신념도 줏대도 없는 호구일 테니까, 열린 마음을 견지하는 것 또한 강한 신념으로 기인해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인팁이다. 객관적인 설득이 들어오면 내 생각을 접는 것에 적극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역시 기본적인 아집 따위들이 덕지덕지한게 중년이란 존재겠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

 

여하튼 나는 우리가 만난 이 산부인과 병원에 엄청난(?) 팬이 되어버린 터라. 이제는 예스맨이 되어 있었다.

이미 제왕절개가 추가 되었더라면 수술비까지 추가가 되어 버렸을 터인데 원장 선생님의 갓핸드로 타의적 자연출산이 강제되어버린 우리 가족은 병원비를 아낀 셈이 되어버린터에 새삼 조리원 입소쯤이야.

가난한 우리 가족이었지만 마음이 열리면 그런 돈은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데에 뻔뻔함과 기꺼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2주간 조리원에서 출퇴근 하는 생활을 하면서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병원 밥을 먹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수면 시간에는 아이를 돌려보내고 둘이서 잠드는 그런 개꿀과 같은 시간을 보내었다.

물론, 그 때는 이게 그렇게까지 귀하디귀한 시간이고 기회였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충분히 만끽했었던 것은 사실이며 때때로 어떤 위안의 기억이 되어주기도 했다.

 

조리원 밥은 맛있었지만.. 어째 병원 밥보다 맛이 없었다. 어차피 거의 단일 메뉴 미역국이라 직관적인 비교가 가능했는데 아무래도 마무리 지을 때의 기름이 다른 종류인거 같았다. 아닌가? 미역 볶을 때의 기름이 다른가? 살짝 입안에서 기름이 끈적하게 감돌았다.

 

아내랑 나는

 

병원에서 맛있게 꼬셔놓고 단가 조절하는가?”

 

라며 낄낄거리며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충분이 맛이 있었고 양도 남아돌았으며 나는 이 병원의 팬이었으니까

 

이 후로 종종 이 병원에 아이를 안고 검진을 갔다가 원장님을 스쳐 지나 뵙노라면 나는 무조건 자리 벌떡 일어나서 120도로 인사를 박았다. 나를 기억 하실 리는 없지만 그건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였다.

 

조리원에서의 2주가 지났다. 더 있고 싶다.

 

근데 더 못 있는다하더라...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를 트럭에 태울 수는 없으니 택시를 타고서 집으로 왔다. 우리들의 아련한 원룸..

 

혹자가 말했다. 신혼집을 원룸으로 살수있기는 있다. 라고... 애 하나까지는 키우며 살기는 산다... 라고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는지 나는 몰랐지..

 

우리의 첫 신혼집인 그 원룸에는 2년을 살았고 우리 셔니의 돌 무렵에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 게임 시작인 것이다.

 

-출산은 프롤로그였을 뿐이었다.

 

아쉽게도 곧이어 아내는 친정집에 3개월 정도 지내고 온다.

 

이에 관하여는 그리 할 말이 없다. 난 반대를 했지만 자신은 아직 몸이 다 회복 되지 않았으며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저 혼자 살던 그 모습 그대로 다시 3개월을 살았을 뿐이다.

 

이때는 뭐 좋은 휴가 아니었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 뿐이다. 더러는 내가 결혼을 하기는 했었나 싶은 감각이 내 주변을 감싸고는 했다.

나는 두고두고 이 시기를 가지고 아내에게 불만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당신 뱃속에서 열심히 컸어. 난자가 체세포중에 가장 큰 세포라지만 0.2미리미터이고 거기서 40센치로 컸다는 건 겨우 10달 동안 2000배를 자란거야.”

 

아내가 돌아왔다. 때는 2.

 

가장 추운 계절.

 

곧이어 준중형 중고차를 샀다. 서민3(sm3). 사실 나는 sm520을 원했다. 뒷좌석의 승차감도 생각하고 싶었고, 연비 평가는 안 좋다지만 고장 안나는 차로 알음알음 유명했기에, 하지만 아내는 정말 자신만의 단 하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차로 슴삼(sm3의 우리 애칭)이를 골랐다.

그것은 디자인이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우리 차의 연식이 파악이 되기 힘들 것일 것. 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가난보다 가난한 것을 티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일평생 돈이 모자라지 않게 살아오다가 나랑 결혼하면서 덜컥 가난을 마주하게 되었고 영혼의 방황을 긴 시간 동안 하였다. 항상 지금 상황을 타파해내려고 애썼고, 항상 궁리했다.

슴삼이는 준중형으로서 정말 소명을 다했고 최근에 판매할 때까지 큰 고장없이 잘 달려준 정말 고마운 녀석이다.

몇 대의 차를 다뤄봤지만 이렇게 손이 안가면서도 별 탈없이 잘 달려준 녀석은 없었다. 일종의 뽑기 운도 좋았던 거 같다.

 

아이는 쉽지 않았다.

흔히 100일까지는 집에서만 키워야한다 하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아이는 외부환경에 취약했다. 게다가 겨울이면 꽁꽁 싸매서 다니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른다.

 

아이가 집에 오고 나서 항상 해준 것은 목욕시키기이다.

이러한 잡무에 대한 배움은 빠른 편이라 간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매일 목욕을 시켰다. 어릴 때 많이 씻겨야 커서 피부가 깨끗하다는 말을 들은 것도 있고 체내의 독소 배출에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 하루 동안 살면서 손실이 생긴 체온을 보충해주면서 열 에너지를 리셋시켜주는 생활 루틴은 위생과 더불어 면역력에 좋다.

사람의 먹고 문제는 결국 먹은 음식을 열에너지로 전환하여서 세포를 작동시키는 데에 있다.

온수를 통한 직접적인 열에너지 보급은 여느 영양소나 비타민 등지와 더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감기와 비염을 달고 살면서 두통이 잦던 내 어린 시절에도 온수 목욕을 매일 해주고 나서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는 체질이 되었던 터라.

면역력이 취약한 아이에게 목욕시키기는 내게 아주 중요한 사명 같은 것이었다.

 

나 또한 항상 따뜻한 물에 씻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해주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는 아이의 마음의 환심을 사기로 작정했었으니까!

 

아이는 태어날 때까지는 아내의 뱃속에 살다가 태어나서는 2개월 정도를 처가에서 보내고 왔다. 그래서 자꾸 나한테 오려고 하지 않았다. 안으면 뿌리쳤다.

 

부아가 치밀었다. 친정 다녀온 아내가 미웠다. 이미 엄마의 손을 탄 아이는 아빠에게 오지 않으려고 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약점을 찾고 작은 빈틈을 찾아 서서히 파고 넓혀야 한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 대하여 마음을 조급하게 쓰는 이유는

 

아빠가 최고인 것은 10살 때 까지

 

라는 말을 듣고서 마음에 꽤 깊이 남아있어서이다. 아이에게 부모가 세상에서 최고인 시기는 인생에서 10년뿐이다. 그 후로는 친구랑 놀랴 여자랑 놀랴 부모랑 놀아줄 일이 없다는 거지.

 

그래 그 10년은 알차게 아이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영향이 크다.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운신하지 못할 때 에 내가 아이를 운명을 결정 지어주며 좋은 감정 좋은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자기 발로 돌아다니고 성장하고 자기 뜻을 펼쳐갈 수 있을수록 나에게 기회는 떠나가는 것이다.

 

그 벽을 허무는 첫 번째 전략을 목욕으로 삼은 것이다. 접이식 욕조에 아이를 눕혀 팔로 목을 받쳐서 요리 조리 물을 몸에 토렴식으로 끼얹어주면

마치 편안함을 느끼는 대기업 회장님의 표정으로 느긋하게 온기를 즐겨주셨다.

 

음 이런 편안함이라면 너의 손길을 허락해주지.’

 

라는 느낌.

 

아내는 손목관절 통증 등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고, 보통 잘하는 사람이 계속하면 테크닉의 간극은 점차 벌어지는 것이다. 7살이 되도록 아이는 거의 내가 씻겼고, 이것은 아이와 나 사이의 유대관계 형성의 강력한 기초가 되어준다.

 

두 번째 전략은 아이의 활동성과 호기심에 기인한 부분이다. 안아주려고 하면 자꾸 거부하고 엄마의 품을 찾지만 아기띠를 메고 앞보기를 해주면 얌전히 주변을 탐색했다. 비록 나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산책을 시키려고..했지만 아직은 날씨가 춥다. 날씨가 풀리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아이의 하루는 4시간

아이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에 앞서서 지켜줘야하는 것은 기초적인 의식주 문제 보조/해결이었다.

아이는 처음 와서 딱히 외향적인 활동은 없다. 불가능하기도 하고, 먹고 싸고 잔다. 이것이 4시간 루틴으로 돌아갔다. 하루 4시간 6세트 반복.

먹는다. 트림시킨다. 재운다.

 

첫날 첫 순간의 애틋함과 순수한 그 경이로움과 기쁨은 바로 그냥 밤이 되면 와장창 깨어지는 것이다.

 

새벽 2시에 운다. 허둥지둥 일어나서 아내가 젖을 물린다.

하하 허허. 둘은 깜짝 놀란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일어난 헤프닝 이라고 생각한다. 젖으로 배가 부르자 이내 곧 아기는 잠든다.

우리도 곧 잠들었다. 아니, 나는 잠들었다.

자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면 곧바로 잘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잘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나고 후자는 아내였다.

 

새벽 4시에 아기가 운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을 때 즈음에 수면리듬이 와장창 깨어진다. 이러면 하룻 잠이 싹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이윽고 해가 뜨면

짜잔. 최악의 아침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일과가 아이가 통잠으로 바뀔 때까지 1년에서 1년 반 사이의 기간 동안 매일 밤 반복하는 것이라는 것은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리 들어도 모른다.

내 이야기가 아니니까. 아니 알면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겪게 될 고생과 고통이 딱히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서둘러 유축기를 사러 갔다.

그렇다. 아내는 모유가 나오는 갓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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