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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라이프

크리스찬의 시각으로 본 영화 300

by 켄 루미나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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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개봉시 상당한 이슈를 불러 일으켰고, 나 또한 그 특이한 영화색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영화관으로 갔었다. 당신들이 아는 영화 300은 어떠한가?

 

 300은 다른 의미로서 나를 감동 시켰다.

 

 

나는 레오니다스 왕에게서 예수의 모습이 보인것일까? 나는 계속 영화를 보는 내내 성경의 구도와 흡사한 모습에 처음에는 장난, 혹은 우연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대놓고 성경의 이야기를 이 영화에 숨겨놓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허나 대부분은 알아챌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는 없지만, 재량껏 갖다 붙여보겠다.

 

탄생

 

이에 헤롯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마태복음 2:16]

 

우리는 예수의 탄생하면, 크리스마스의 성탄을 떠올린다. 성스러운 밤. 하지만, 왕중의 왕이 이세상에 오셨을때,

그 댓가로 베들레헴은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 엄청난 사건이나 우리는 심도있게 다루지 않는다.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하시기 위해 희생된 피의 양이 얼마나 될것인가.

그로 인해 흘린 눈물은 얼마인가.

그리고 탄생하시고, 세례(침례)를 받으시고는 40일간의 시험 이후 활동을 시작하셨다.

물론 스파르타의 아기 선별법은 유명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이 영화는 애꿎은 대입이 되어있다.

그리고 페르시아 사신의 방문, 그리고 그가 요구한 것은

 '흙과 물'

그리고 계시를 받기 위해 신전에 갔으나,

종교는 타락했고, 

 강국의 권세에 굴복함 역시

 예수 탄생 이후

활동하시던 시절과 같다.

 

여하튼 300명을 이끌다 만난 그리스 인들을 향해 그는 묻는다.

자네의 직업은 무엇인가?

스파르탄, 그대들의 직업은 무엇이지?

 

페르시아 군함의 침몰

 기뻐하는 병사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큰 손실에 불구하고도 대군을 이룬 페르시아.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성경을 떠올린 것은 이 장면부터이다.

이 세상에 맞서 싸워온 교회의 모습이

교회가 맞서려 한 세상이라는 적군의 규모가 이렇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처음 품었던 생각이었다.

 

 

 

그리고 몇번의 전투 후에 직접 왕림한 크세르크세스 왕.

성경 표기상 아하수에로왕.

 

유대인 왕비 에스더의 남편, 허나 맞다면,

이 전쟁 이후에 크세르크세스는 에스더를 아내로 삼는다.

 

크세르크세스 왕의 방문

/감탄하는 레이니다스

그리고 회유하는 크세르크세스.

여기서 뜬금없이 크세르크세스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나는 왕중의 왕

신중의 신.

 

인간 주제에 신이라고 지칭하다니... 뭔가 어색해..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하지만, 뭐, 그래 모든 왕들의 왕이 되어 (그당시의) 지구상에 자신보다 높은 존재가 없다고 느끼면, 신이라고 생각해도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신이라고 일컫는 또다른 존재가 생각 났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이사야 14:14]

 

사탄 또한 신과 같아지길 원했다.

허나 신보다 높아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존재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또하나의 존재.

그런데 여기서 크세르크세스는 희안한 제안을 한다.

 

나에게 무릎 꿇기만 하면, 그리스를 주겠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태복음 4:8,9]

 

그리고 무릎에 쥐가 나서 못 구부린 안타까운 레이니다스....

 

 

그리고 거듭하는 전투. 쌓이는 적들의 시체

그리고 포로를 만들지 않고 모두 죽이는 방식 역시.

 

옛부터 이스라엘 민족들이 취한 방식이다.

 

침략한 곳의 모든 사람, 가축까지도 살려두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의 방식.

 

그리고 말도 안되는 거인의 목을 치는 레이니다스

부러진 창끝으로 눈을 찌르고나서 거인의 검으로 거인을 목을 자른다.

마치 골리앗의 최후처럼 ( 이정도는 과민반응인가? )

 

그리고 쭈구러진 유전자를 지닌 스파르탄 엘리오스?

아 아니네 에페알테스

여기서 가룟유다 역을 하는 찌끄래기 스파르탄.

 

크세르크세스의 영광에 굴복하여 스파르타를 배신한다.

그리고 이녀석 테론 배신자. 이 녀석도 나쁜놈.

 그러나 이 부분은 끝에서 다루겠다. 왕비로 인해 따로 이야기 할 부분이 있다.

여튼 이어서

딜리오스.

레이니다스는 그에게 전령의 역할을 맡긴다.

 

그리고 괴멸직전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에게

 

승 리

를 전하게 한다. [중요하다!]

 

한편...

 

  여왕을 모함하던 테론은

빡이 돌아버린 여왕에게 칼빵을 맞고 쓰러진다.

그리고 어이없게 페르시아 금화를 바닥에 쏟아낸다.

 솔직히, 배신자의 증표를 의회 한가운데까지 몸에 지니고 참석하는 바보가 어딧는가?

통쾌한 장면이기는 하나.

 

이 장면 또한 이 영화가 영상미와 상징적의미에 더욱더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치 스파르탄의 누드갑옷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신자...얘....이름...

아 에피알테스 ㅋㅋ

그는 스파르타군 300명에게 치명적인 약점인 샛길을 페르시아에게 인도한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스파르탄들.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마지막 권고를 받는다.

체크메이트

 게임은 끝났고, 그들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

 

 울 왕은 관대하시다!

그리고 회유를 권하는 에피알테스

그리고 그 배신자에게 우리의 짐승남 레이니다스는

영생하라.

원수를 용서한다.

 피끓는 스파르타의 왕이 베푸는 이 용서는 더욱더 의미심장한 의미를 남겼다.

 

그리고 결국 무릎을 꿇는.

 그리고

 

가장 극적인 장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

 

레이니다스는 무릎을 꿇고 굴복한 듯이 보였으나.

 

그래서 크세르크세스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려 한다.

그리고 레이니다스의 마지막뒤집기 역수.

 

예수를 죽이고 기뻐했으나,

 

그것이 자신의 종말을 고하는 것임을 깨닫는 사탄 마냥 말이다.

 

 왕이시여,

당신과 함께 죽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대들과 함께 싸울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흐름을 끊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장면을 보고는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피 끓는 짐승남 레오니다스의 마지막 말은

 

my queen, my wife, my love

 

이다.

 

나의 여왕, 나의 아내, 나의 사랑

 

그녀,

 사실 영화 /300/에서 여왕의 스토리는 빠져도 본편진행에 아무런 영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그녀의 비중은 매우 높다.

 

왕와 왕비의 베드신도 있고,

 

 여기서 제작자는 굳이 왕의 사랑하는 여왕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것이 나를 더욱 이 영화 /300/을 더욱 경이롭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녀는 당당한 스파르타의 전사를 낳을 수 있는

스파르타 여인이었으며, 왕비였다.

 

하지만, 왕을 위해서 였으나 결국 그녀는 몸을 더럽혔다.

그러나 결국 그 악당 테론을 찌르고, 그를 기다리고 사랑한다.

 

이것은 교회 아닌가?

여왕은 교회로 표현 된것이다.

바로 예수의 유일한 사랑이요, 신부.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호세아 1:2]

(그다지 적합한 말씀은 아니나. 별로 표현할 구절도 없고 해서 썼으나. 그냥 우리는 항상 배반하고 회개하는 인생임을 표현한 듯한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이나.

역시 교회에도 해당되는

 

우리 각 개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경이롭다고 하는 것은,

일반 기독교인은 '교회'에 대한 이해가 높지 못하다.

 

이 영화 역시 그냥 예수님 한명만을 표현 했다면,

그냥 많고 많은 영화중에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왕비를 더함으로서 수준높은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와

이세상에서의 교회의 본성까지 표현하는

원작자의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본편....

 

 그는 왕이요.

 

 전사였으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만큼은

여왕을 사랑하는 왕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모든 사회적 위치 직분을

모두 떠난 상태에서의 순수한

자신의 사랑.

그녀를 그리며,

 

적의 화살을 받아낸다.

그가 300명을 이끌고

  불의 문으로 온것은 무엇 때문인가.

왕으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후퇴하지 않고 항복하지 않는 스파르타의 전사로서.

 하지만,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또하나의 진실은

 

자신의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싸우게 한 그것은

사랑이었다.

 

우리를 기억하라

(Remember us)

 

내 이야기를 전하거라

그리하여 그리스 전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해다오

대단한 이야기가 될것이다.

승리의 이야기

(victory)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은 17:9]

 

딜리오스는 그의 임무를 완벽히 해낸다.

그리하여 1년 후에

1만의 스파르타 군대와

3만의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군을 향해 진격한다.

 

감사하라!

레오니다스와 그를 따른

300명의 병사들에게!!

승리를 향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내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올때,

 눈물 범벅이 되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한번 보는 그 순간에도 눈시울을 붉혔다.

 

 

 

 

레오니다스에게 투영된 그분과

 

그분이 바라는 승리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해나가야할 그 싸움에 대해.

 

자유를 꿈꾸며,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창을 든 그들의 모습이 말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하지만 정작 원작자가 정말 이런 의도대로 만든 것인지는 나로서는 아는바가 없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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