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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라이프

예수님이 자라난 환경

by 켄 루미나 2023.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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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수님이 태어난 환경.


일단 예수님이 태어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지요.
율법을 지켰으니까요.
율법은 바로 신[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법이지요.

그리고 이 율법을 모든 규례는 '죄'를 다루는 법.
부정하고 더러운 것들을 다루는 일련의 방법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모세 이후에 예수님까지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스라엘은 민족 단위의 단련을 받았습니다.
초기의 이스라엘은 율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징계와 징계를 통해 점점 올바른 길로 인도받았습니다.
 많은 죄를 지은 만큼 많은 회복이 있었고, 점점 이스라엘은 성숙해졌습니다.

그 흐름 중에 하나가 바리새인의 출현이 아닌가 싶군요.

여하튼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혈통적으로나 행위적으로나 가장 [그나마] 깨끗한 민족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게 단련된 이스라엘 위에 예수님이 태어났고,

 불행 중 다행으로 유아기에는 이방 민족에 태어났을 경우와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나라 날 수 있었겠지요.

 예수님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마 의식 세계는 완성이 되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인지하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자그마한 인간의 유아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살 수 없었겠지요.
 그 부모가 무식하게 더러운 것을 아이에게 행해도 거부할 수 없었을 겁니다.
보통 아이들처럼 방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통 유아기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이 스스로 그 시절의 기억을 잠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니는 이성의 부모[남아 엄마]가 이상형이 되는데 가장 큰 라이벌인 상대방[아빠]을 미워하게 됩니다. 부모를 미워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트라우마[흔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는]를 견디지 못하고 기억을 봉인하는 경우이지요.

예수님이 그럴 리가 없지요. 자아 확립이나 질풍노도나 방황 따위... 즉, 정신적인 부분에서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에 대해 100% 이해하고 계셨다. 생각해 봅시다.

비록 죄가 되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셨다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육신을 함부로 다루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아마,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은 시점에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결한 행위와 육신에 유익이 되는 것들을 해오셨을 겁니다. 먹는 방법이라든지, 용변을 보는 법, 걷는 법, 자는 법, 숨 쉬는 법. 모든 것의 정답을 알고 계셨을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오셨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시는지요?

보통 인간은 인간 육신의 잠재 능력의 10%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자신이 행동하시기 시작한 30세 이전에 웬만한 고등의 육체를 이루어내셨을 겁니다. 
 예수님이 해내신 이적들은 다른 사람들도 해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신력이든 귀신의 힘이 든 말이지요.
한 병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자 그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신이 행하는 능력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갈고 다듬어 만들어낸 능력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능력이 빠져나갔다는 것은 전체 총량이 유한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한 능력에는 플러스 / 마이너스 개념이 무의미) 물론 무한 능력이라도 그 능력이 쓰이고 안 쓰이고 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충분히 인지할 수는 있겠지만요.

 재미있는 부분은 예수님의 40일간의 금식입니다.일반인의 몸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십니까?상식적으로 인간은 한 달 굶어야 죽고,물을 일주일 안 먹으면 죽습니다. (뭐 그렇다고들 합니다) 과거 인도에서 6개월 동안 참선 중인 청년의 이야기를 뉴스로 본 적이 있습니다. ( 그런 참선의 수련은 역시 인도가 짱이죠.) 6개월 동안 미동도 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참선 중이라고, 다만 침 삼킬 때 목젖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라는 내용을 봤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육체를 갈고 닦는 부분에서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모든 생명에는 기가 있고,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이 그것을 어찌 갈고 닦지 않았겠습니까. 특별히 풍채가 좋아서 잘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했고, 온몸의 경혈을 막히는 데가 없이 잘 통하게 했고, 기운은 충만하게 채우셨을 겁니다.

 

 항상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물 위에서 땅 위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천명을 먹이셨다... 남자들만 계산한 것이면 전체 인원은 2만명으로 사람들은 추론합니다. 혹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에는 전파 따위를 띄우지 않아서, 시끄러운 것이 없어서 상당히 멀리에서도 잘 들렸을 것이라고...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저 는 옛적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맑은 몸 상태를 유지하면 목소리도 맑게 나옵니다. 성악가들도 근육은 만들지 않지만, 배 근육은 적당히 단련합니다. 스트레칭 정도는 합니다. 그들은 몸을 울려서 노래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만여명이 모인 곳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조용히 한다 하더라도.
일상 대화 형식의 목소리로 모두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평범한 이론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됩니다. 일일이 소리쳐도 될까 말까. 큰 건물 안에 사람 가득 채워놓고 마이크도 없이 모두에게 그 목소리를 전달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두 시간 세 시간이 되어보십시오. 어중간히 잘 닦여진 육체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30세의 나이 때 이미 웬만한 고등 수행자의 수준의 [이른바] 득력을 지니고 계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그 삶에서 필요한 그 육신의 능력을 스스로 갈고닦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하나님의 아들이니까...신이니까.

신의 능력으로 이 모든 이적을 행했다... 는 것은 천사조차도 부리지 않았다는 부분을 보았을 때 약간 아이러니하지 않나 싶군요. 신의 능력과 신의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게 되는 육체의 굴레에 갇혀계셨습니다. 사람도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지혜의 발휘가 틀리고 몸의 사용 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항상 최고 상태의 신체와 두뇌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셨을 겁니다.예수님이야말로 인간으로서는 알지 못하는 풍수와 지리라든가 생체리듬이라든지 먹는 음식, 하는 행동에 대한 모든 변수로 발생하는 외부 요인들에 대해 100% 컨트롤하실 정도의 앎은 가지고 계셨을 테니깐요.

 그러나, 그랬다고 하나...어쨌건 유한한 인간의 몸.그야말로 사람의 영혼이 구더기의 몸에 갇힌 꼴.얼마나 갑갑하셨을까요.천군 천사를 불러 내리는 것이 손가락 까딱하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었음에도.예수님은 일평생 삿된 연유로 그런 권능은 행하지 않으셨습니다.사단을 물리칠 때, 그리고 변화산에 가셨을 때... 외에는[혹시 또 있나요? ㅋㅋ] 그러한 그분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이적을 행하신 것이 하늘의 권능으로 행했다는 것도 좀 어폐가 있군요.믿어지실진 몰라도. 인간의 육체에 구성된 능력으로도 아주 가능합니다. 먼 거리의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말이죠.전 비슷하게나마 겪어보기도 했습니다. (망할 놈의 당한 덕분에요 ㅋ)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혹시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사람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생명 나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죽긴 죽을까요? 뭐, 일단은 흙에 속한 육체니 죽긴 죽을까요. 인간은 죄를 범했습니다.인간에게 죄가 생겨났습니다.죄의 삯은 사망입니다.즉, 죽음이라는 것은 죄의 결정체요, 죄의 완성형이라는 말입니다.

죄의 완성.가장 완벽한 죄.
게다가 시간이 무의미하신 하나님 앞에는 지금 죽든, 1000년 후에 죽든 똑같은 죽는 거라는 해석도 무리하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그래서인간은 죽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율법은 죄를 범했을 때 죽지 않기 위한 법입니다.죄가 가벼우면 가벼운 정결한 방법이 있었고, 무거우면 무거운 정결한 방법이 있었습니다.설정한 자는 전신을 물로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정수가 묻은 모든 옷과 가죽은 물에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정결케 하지 않으면 죄가 가볍든 무겁든 상관없이 죽습니다. 너희는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  .

[뭐  성막을 더럽힌다는 조건부가 붙지만]

 결국 죄가 있냐 없냐의 문제지. 크냐 작으냐의 문제는 아닙니다.죄가 있으면 죽습니다. 육체의 구성이 완벽해도 그 몸에 흐르는 피에 '죄'가 있으니 죽지요.
같은 주물들이 있더라도 부어넣는 금속에 따라 달라지듯이 형태는 같지만 다르듯이

 구조적으로 완벽하다는 증거는 예수님이 그 육신 그대로 부활 하셨다는 것이겠지요.물론 다른 구성물로서 흙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육체로요.

마지막으로 하나 언급할 미스터리는 예수님은 하늘의 육체로 다시 나셨는데, 땅의 육체도 무덤에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썩을 육체인데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은 새 육체를 입었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도 훗날 홀연히 변화한다고 합니다. 땅의 육체가 하늘의 육체로 치환되었다는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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