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고린도전서 11장 1~15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첫 번째로는 구약과 신약을 멋대로 섞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상기의 말씀 같은 고린도전서는 신약성경인데, 이러한 신약 성경에서 더러 나오는 '규례'라는 것을 마치 율법처럼 취급해 버리면 성경 전체에 엄청난 혼란이 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에 써놓은 규칙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에 율법이 끝이 났다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자꾸 별의별 규칙을 다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면 성경이 오류투성이로 보이게 되어 버립니다.
당연히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 죽는 법'이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 법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거듭나서 천국에 가는 성도들에게
'자, 우리가 자유롭게 되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우리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이 좋다'
라고 하는 권유의 규칙들입니다.
이 규칙들은 '지키면 좋은데 안 지켜도 큰 문제는 없는' 규칙입니다. 지키지 못했다고 갑자기 약속받은 천국이 사라지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에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신약성경의 규칙들을 보노라면 사도 바울은 어마어마한 꼰대가 되어 버립니다. 무슨 율법의 왕 같은 그야말로 바리새인으로 비쳐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성도가 되지 못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율법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벌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영원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28 KRV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사람은 모두가 다 죽습니다.
그런데 굳이 죽음이 왜 벌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착하게 살아도 죽는 것은 똑같은데요.
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유한한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혼의 죽음이 오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데 왜 지옥에 멸한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맞습니다. 영혼은 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속성은 하나님의 영혼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은 즉, 신의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신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을 멸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멸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죽음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이라는 곳이 존재합니다.
영원한 벌, 영원한 죽음.
영원한 존재에게 줄 수 있는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죽음이 영어로 'Dead'이라면은 영원한 죽음은 'Deading' 이라고 해야 할 것이지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죽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를 이야기해보기 전에...
영원한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곳에 가더라도 만약에 내가 빚이 많고 근심이 많으면서 몸까지 아파서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처지라면 행복할까요?
내일의 대출 이자와 침대에 누워서 당장 도와줄 사람 없으면 화장실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발리에 있든 괌이 있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내가 천국에 가더라도 지금의 내가 가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잠깐만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백억이 생겼어요. 아니 천억이 생겼어요. 아닌 거기에 매달 천억이 생겨요.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돈을 모으실 건가요? - 이미 있어요.
빌딩을 사나요? 왜죠? 돈을 더 벌기 위해서잖아요. 빌딩은 내 인생이 목적은 아니에요. 돈을 더 벌기 위한 수단이죠. - 이미 있어요.
비행기? 사세요. 테슬라도 사고, 페라리도 사고, 요트도 사고, 집도 나라별로 사고, 명품도 사세요.
부자도 방심하면 망하죠? 근데 그것도 돈이 모자라서 그래요. 써도 써도 안 망한다고 생각하고 써보세요.
스페이스엑스 주식을 갖고 싶나요? 사세요.
사고사고 사고 다 사면 그다음에는 뭘 하실래요?
인생의 목적이 '사는 것'에 있을까요? 소유가 가득하고 나면 뭘 하시면 되나요?
사는 것만이 인생일까요?
내 삶을 살아야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던가 찾아야죠. 부족함이 없어졌다면 말이에요. 욕망은 부족함에서 생기는 것이고, 욕망은 피곤해요. 욕망을 바라보는 인생이 인생의 끝이 아니죠.
영원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이에요.
여러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기본 3요소인 의식주를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은 먹지도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지치지 않는다면 좋은 음식이 필요할까요?
여러분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잠을 자지도 않아도 된다면 집이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내가 약해지지도 않고 그 누구도 나를 손가락질할 수 없고 수치가 없어진다면 옷이라는 것이 필요할까요?
의식주가 생필품이 아니라 단지 기호품이 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영원한 삶을 가지는 성경에서의 말하는 영원한 육체를 가진 인간은 공간과 시간을 무시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일한 능력의 존재가 됩니다.
내가 땅을 투과해서 지구의 내핵을 구경하든, 우주의 끝을 다녀오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는 존재가 된다면, 나라는 존재가 어디에 있는가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나는 천국이라는 이름 아래의 어떤 부동산에 의지해서 양육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는 완전한 존재로 먼저 독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안함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신은 있으시지만
문이 닫혀 있는데 자유로이 다니시고, 몸에 피를 모두 흘려 피가 없으며, 그런데도 음식을 드십니다.
그 상태로 다른 차원의 하늘에 올라가서 지금도 살아있는 채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부족함이 없는 존재에게 소유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의미 일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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