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쾌락, 혹은 쾌감에 대하여.
인간은 쾌감을 좋아한다.
쾌감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한다. (일단은 쾌락과 쾌감을 달리 구분하여 말하진 않겠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라는 소설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개략적인 내용을 다루자면,
한 인간이 두뇌에 간단한 장치를 하고 나서 그의 두뇌는 엄청나게 명석해지기 시작한다.
전기신호로 인간의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하는 장치를 하고 나서.
어떤 미션을 수행해내면, 보상으로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기본 시스템.
결국 그는 세계 최고의 두뇌가 되어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와의 체스 게임에서 승리를 얻게 되고
다음날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그것을 두 명의 주인공이 파헤쳐나가는 이야기.
쾌감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를 하게 해준 것이다.
뭐 하여튼 잘 보면 꽤 흥미로운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은 쾌감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찾는다.
마약은 강제적으로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약이 아닌가. (사실 '엔도르핀'과 '도파민'의 구분은 잘 모르겠다. 아, 검색해보니 도파민은 흥분 물질이다)
마약을 보면 인간의 쾌락은 상대적인 요소를 가짐을 알 수가 있다.
마약은 약효가 끝나고 평상시로 돌아오게 되지만, 강한 자극을 받은 만큼 반작용으로 이른바 '금단현상'을 겪게 된다.
마약 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상태일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인간은 '전번보다 더 강한 것'을 찾게 된다.
인간은 무엇을 하던 다음보다 강한 것을 찾는다.
마약의 양을 늘린다.
인간은 굳이 마약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일종의 불만족 상태를 만족 상태로 끌어내야 안도한다.
배고프면 배부르게 더우면 시원하게 찌뿌둥하면 개운하게..
모두 같은 효과를 지닌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전번보다 더 강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매우 적다.
쾌감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快... 여기에는 '통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나는 예전에 한 수도인을 만난 적이 있다.(도쟁이들이야 다 사기꾼이긴한데..)
다른 일반적인 놈들은 사이비에 돈을 요구하지만,
이 사람은 그야말로 '전도인'이었다.
게다가 내 관상을 보고 내 과거뿐 아니라. 내 외조부의 성향까지도 파악해냈다.
내가 다 당황할 정도였다.
그는 나더러 '관상은 정말 좋은데 '척'이 많다'고 했다.
척.
막힌다는 뜻이다.
척척박사
막히는 게 없는 박사.
무척 기쁘다.
막히는 게 없이 기쁘다.
인간은 '통'하는데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일이 막히면 불쾌감을 느낀다.
원하는 방향으로 풀리지 않으면 불쾌감을 느낀다.
목욕하고 나오면
'개운하다'고 말한다.
기운이 열렸다.'라는 뜻이다.
몸에 박힌 곳이 풀어져 기운이 잘 돌 때 인간은 '개운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곧 쾌감과 일반이다.
가령 자위하면, 전신에 찌릿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일반적인 단순한 표현을 하자면 그냥 오르가슴. 이라고 표현하겠지만.
매우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개운해지는 것'이다.
개운한 것은 몸에 이로운 것이다.
다면 자위로 개운해지는 것은 다만 썩 좋은 것은 아닌데,
정액을 사정한다는 부분에서도 그렇지만, 흔히 말하는 기운을 소모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정의 영향까지 합치면, 일상의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2 일반에서 3일의 시간이 소모된다.
2 일반에서 3일 정도 사정 후에는 허리가 뻐근해지는데, 이것이 되돌아오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기 수련이 잘 안된다.
여하튼.
인간은 변화 없고 무미건조하고 밋밋하면 불만을 느끼며, 어떻게 하든
생활 중에서 두뇌에게 새로운 자극 거리를 항상 제공해야 한다.
인간마다 다르지만,
두뇌는 하루 동안에 일정 수준의 자극을 받아야만 만족한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뭔가 허전해서 잠도 들지 못하고, 말똥말똥하며 밤을 새우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다 보니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장르가 생겨났고,대리만족을 위해 사람들은 3S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또,
인간은 고통에 빠지면 방어기제로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도르핀을 강제 분비한다.
그 방법을 이용한 대표적인 두 부류가
고행자들과
SM플레이어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고행자들은 그 엔도르핀이 득도를 위한 과정이고
SM들은 그 쾌락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고통의 길을 통해 쾌락을 찾기도 한다.
고행자들은 그 자신을 고통의 더미 속에 빠트려 자기 신체 상체를 일상 상태보다 불쾌하게 내린다.
그리하여 일상 상태로 돌아오는 상태를 상승 곡선으로 만들면서도 상당한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마약쟁이들과 수순이 반대이지. 그게 다른 것은 없다.
좀 더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인간은 자극과 쾌락을 끊임없이 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마치 그리스도인들은 고행자가 아닌가 했다. 인생의 험난한 길로 선택받은...
하지만, 저번에도 언급했지만, 사도 바울이, 베드로가, 그 외 뭇 제자들이 그들이 간 길은 과연 고행이었을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억지로 힘들고 슬프고 괴로운 데 가기 싫은 길을 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사실 현재의 우리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
애굽의 세상이 더 달콤하고 즐거운 게 많다.
왜 이런 운명이 주어졌는지 서글프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점점 더 알아 갈수록 이 길은 점점 환희의 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제대로 본적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신앙길이 어느새 내리막이 되었다는 대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절로 된다는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환희의 길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부자와 나사로'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손가락에 물 한 방울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 표현을 하였을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평화와 휴식이 없는 음부라는 곳은 '서늘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아무 생명이 없는 황무지에서 씨 한 알이 심기워지듯이
고민 중에 혀끝에 느끼는 그 서늘함이, 한 알의 생명의 씨앗을 요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자는 '나에게 다른 영광은 필요 없으니, 다만 나를 구원만 하여 주소서...'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정작 실제로 우리는 의외로 구원받을 때의 기쁨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의아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매우 기쁜 사람도 있습니다.
마름밭이 얼마나 갈렸는가에 따라 그것은 다르겠지요.
어떤 이는 제가 여태껏 표현한 '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영의 구원'을 받을 때 함께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우리가 받을 영광에 비하면, 우리가 처음에 느낀 것은 고작 그 정도 이지 않을까... 하는...
아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고 순도의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단순한 도파민의 중독을 이야기하는 바는 아니지만, 말장난 맞추기 같은 겁니다. 즐거운 길.
마약도 한계가 있습니다.
쾌락의 과부하가 걸려버리면 죽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날마다 어제보다 더한 시험을 받기도 하지만,
알면 알아 갈수록 어제보다 더한 기쁨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정진한다고 하더라도 그 끝에 도달 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얼마든지 '어제보다 더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을 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고고하고 심오한 학문이자
최고의 기쁨의 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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